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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憺談한 이야기] Essential of Residency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22일

생각나는 만큼만 적기로 하였다. 현재는 2021년 1월 14일 새벽 한시를 지나고 있고 제주, 그중에서도 조천면 와산리 스위스마을의 모 거처에서 이러한 글을 쓰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담담히 할 수 있을까 고민을 아주조금! 했는데 써놓았던 글 중에 미발표작이 있었고 현재의 상황과도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것에 스스로 타협을 하였다. 나는 작년에서 올해로 넘어오며 서울에서 제주로 거주지를 바꾸었고 제주행 초기 목표였던 프로젝트가 성공도 실패도 아닌 상황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사과를 해가며 제주에 남게 되었다. 그 결과 아티스트 레지던시라는 하나의 생활동기를 얻게 되었고 그의 연장에서 무엇이든 적어 남기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제는 레지던시 참여작가님의 외부 전시로 인해 종일 디스플레이를 하고 온 참이며 어제의 제주는 한낮기온 영상 12도를 기록했다.


이다음으로 나오게 될 글은 레지던시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다. 몇해전 해외 레지던시를 다녀왔는데 그것에서 이어지는 최근의 상황을 함께 이야기 하고 싶어 공유하고자 한다. 이상하고 웃기게도 현재는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랬더니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상황보다도 레지던시가 무엇인지, 나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공유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 끝에 이전에 썼던 글을 다시금 들추어보게 되었다. 그리곤 다음이다.


 

짧고 가벼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결정을 할 수 있게 도와 준 기획자 Shazeb에게 큰 감사를 전한다. 글의 서두에서 그에 대한 감사를 밝히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서술하겠다.


2020년에 접어들어 우리는 신기하리만큼 동일한 어려움과 맞닥뜨렸다. 인류역사상이라고 까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세계대전을 경험하지 않은 다국적의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크고 동일한 문제에 당면해 있다. 아직까지 나아지지 않은 지금의 상황은 우리 모두를 새로운 시공간에 머물게 하고 있다. 나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 거기에 나는 자신의 개인사와 더불어 한국의 어려움을 목격하며 긴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되었다.

지금부터 이야기 하게 될 것은 이러한 시간동안 가지게 된 단상들을 엮어 놓은 것이다. 앞서 말한 긴 시간 중에 나는 ‘폐쇄의 공포’를 마주했다. 최근 하루하루 눈을 뜨면 최소한으로 살다 안전히 눈을 감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통신기술을 이용해 서로를 응원하고 각자의 수고를 격려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응원과 격려였으며 근본적인 원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물론 이것이 개인의 예민함과 조바심에서 오는 괜한 걱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을 보내며 마주한 느낌은 뭐랄까 확실하게 긍정보단 부정적인 것에 가깝고 풍경도 없는 긴 길을 혼자 걷고 있다는 고독함을 주었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상실감과 동시에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조차 가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금 마주치게 된다면 맞서기보다 돌아가는 쪽을 택하게 될 종류의 것으로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폐쇄(Close)와 가깝지는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어떠한 관계와 교류 가능성과 이로써 느낄 수 있는 명랑함, 그리고 하루하루의 삶에 대한 기대를 상실했다는 것이 나를 폐쇄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했다.


앞서 나는 몇 가지 느낌들을 언급했다. 그것은 공포를 비롯해 부정적이고 고독하며 상실감과 불신 그리고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느낌들이었다. 이러한 느낌은 기대에 대한 상실감에서 더욱 증폭됐는데 이러한 상실의 중심에는 여행에 대한 상실감이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실행하는 글쓰기 역시 하나의 여행이길 바란다. 나의 몸을 이곳저곳으로 떠나보내는 것도 여행이지만 나의 생각과 기억을 더욱더 멀리 떠나보내는 것 역시 여행의 한 종류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멀리 떠나길 바라며 나의 생각과 나의 글이 더욱 더 멀리 떠나길 희망한다. 우리는 조르바와 걸리버와 어린왕자들을 통해 여행의 즐거움을 배웠다. 또한 그러한 여행을 회고하는 수많은 음악가들과 미술가들을 통해 삶을 더욱 폭넓게 받아들였다. 물리적인 여행 뿐만 아니라 예술을 통해 정신적인 자유를 느끼는 여행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계 공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물리적인 여행 뿐만 아니라 정신적 자유를 위한 여행의 기회 조차 상실하고 말았다.


여행의 기회를 상실한 나의 거주지(Residency)는 ‘잠든 공간’이 되었다. 그러한 공간은 더 이상 하루하루라는 여행을 위해 쉼의 기회를 갖고 생기(Energie)를 되찾기 위해 머무는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이윽고 그곳은 항상 잠들어 있는 공간이자 잠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한국의 어떤 시인은 “잠은 세상 바깥으로의 도망이라고”도 말했다. 나의 거주지는 그러한 행위만을 이어가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일찍이 하이데거는 거주함(Baun)과 돌봄(Hegen) 등의 단어로 인간의 거주를 설명했다. 그에게 이러한 거주함은 인간에 대한 보살핌(Schonen)이자 마음 씀(Sorge)으로서 염려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사상에 대한 접근이 아니더라도 나의 거주지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이미 각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내 거주지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본질(Essential)을 발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는 몇 년 전의 KYTA를 기억하고 있다. KYTA KALGA를 향하는 여정 속에서 우리(나를 비롯한 한국팀)는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행 전에도 꽤나 자주 만났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새로운 주제에 도달하기 위해 서로를 격려해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각자가 짊어진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달래주고자 배려했고 이러한 시간이 우리에게 새로운 여행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러한 밤들을 보내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많은 술을 마셨다. 이때의 내가 바랐던 여행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우리들의 새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이자 새로운 관계에 대한 바람과도 같았다. 우리는 KALGA로 향하며 기대와 희망, 설렘과 걱정 등을 쏟아냈다. 나는 그것을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아주 구체적이고도 세분화된 감정이며 감각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우리들에게 작용한 여행이라는 새로운 경험이 가져다 주는 놀라운 힘이었다.


KYTA의 공기와 빛은 나에게 새로운 것이었다. 그곳에서 새로운 색과 표면의 매끈함을 가진 사과를 보았다. 바람에 흩어지는 벌판에서는 새로운 소리를 들었다. 아침마다의 안개와 습도는 새로운 신선함이었고 가끔 마주치는 마을의 아이들은 나에게 다른 종류의 미소를 보여주었다. 새로 만난 아티스트들과의 대면도 흥분의 대상이었다. 이밖에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는 작은 충격들이 나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나에게 구체적인 생기와 활력으로 작용했으며 또한 우리는 이런 것들을 통해 예술을 위한 영감을 얻고는 한다. 당시의 나는 길고 어려운 집필의 과정에 있었다. 한 사상가의 사상에서 새로운 사상으로 나아가고자 했고 나아간 사상을 다른 아티스트의 작업과 연관 지어 새로운 감각적 순간을 증명하고자 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집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KALGA가 나에게 준 회복력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나는 쉽게 말해 마음과 이성을 열고 닫는 작업을 병행하며 집필활동 중이었다. 글쓰기라는 최소 작업을 위한 논리만을 남겨둔 채 감성과 감각이 이끄는 곳으로 벗어나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글 속에서 쉽게 길을 잃었고 더욱 더 엉망으로 길을 잃고 헤매어야 이전에 내가 도달해보지 않았던 사유의 어떤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스로의 안에 머물기도,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또 바깥으로 나아가기도 하는 시간들을 되풀이하며 스스로를 독려했고 그것을 KALGA가 도왔다. 어떤 관점에서 본다면 상당히 폐쇄된 지역에서의 되풀이 된 시간들일지도 모른다. 또한 어떠한 폐쇄는 아무런 움직임을 갖지 않으면서도 강도 높은 피로를 동반한다. 아마 현재 우리가 마주한 전 지구적 폐쇄상황이 그런 것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의 공간(Residency)에서의 공감각은 폐쇄적인 느낌 보다는 편안하고 기능적으로 딱맞는(Fit) 느낌의 것이었으며 긴장감과 지구력을 동시에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나는 나뿐만 아니라 내 동료들의 거주지(Residency) 또한 변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나의 친구들과 각자의 거주지를 마주하며 지낸다는 점이었다. 나는 나의 새로운 공간을 만났고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공간을 만났다. 내가 하루하루 어딘가에서 헤매고 돌아와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면 동료들 역시 새로운 이야기를 했다. 오늘의 우리는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었고, 함께 있지만 우리의 하루가 동일하게 흐르진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나와의 새로운 거리를 발견했다.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일매일 서로 다른 여행을 하면서도 가까운 거리에서 그것을 나누고 각자가 피워나가는 새로운 기억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소중한 경험이었다. 레지던시라는 개념은 어쩌면 수행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레지던시라는 고정된 개념 속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수행적으로 그것의 본질(Essence)을 찾아가며 무엇이든 ‘만나가는 공간’이 레지던시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이글을 쓰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그때의 KALGA로 여행 중이다. 이것이 글의 서두에서 ‘Shazeb’에게 밝힌 감사의 이유이다. 그의 초대는 나를 포함한 나의 생각과 글이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주었다. 떠날 수 없는 생각들이 고여 있는 곳은 무덤과도 같을 것이다. 이러한 무덤을 벗어날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이 내가 글을 쓰고 예술을 경험하며 성취해온 것들이다. 여행의 방법 중 한 가지는 긍정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믿음이다. 또한 이밖에 수많은 방법들이 나에게는 자유의 조각처럼 여겨진다. 글을 쓰고 예술을 행하며 나는 자유의 조각들을 만났다. 또 예술과 함께 변화해 가는 나의 공간들 속에서 새로운 조각들을 모아가고 있다. 이 글의 다음엔 또 다른 자유의 조각이 있을 것이고 우리가 당면한 이번 위기의 다음 역시 새로운 자유의 조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하고 싶은 예술을 하자 서로의 소중함을 믿으며.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여행에도 건강과 행운이 깃들길 바란다.


이주희 (아트랩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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